수업이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오신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요즘 애가 부쩍 예민해요.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내고, 동생한테도 툭툭거리고요." 그리고 덧붙이십니다. "그런데 수영하고 나온 날은 좀 낫더라고요."
저는 이 말씀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예민함은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몸에 남아 있는 에너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편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 시동은 걸렸는데 갈 곳이 없을 때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은 곧바로 준비 태세에 들어갑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에너지가 확 올라옵니다. 원래 이건 위험에서 도망치거나 맞서기 위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도망칠 수도 맞설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시험지, 학원 시간표, 친구와의 서운함 같은 것들이죠. 몸은 이미 시동을 걸었는데 갈 곳이 없습니다. 그 에너지가 갈 데 없이 남으면, 아이는 사소한 일에도 튕겨 나가듯 반응하게 됩니다. 예민함은 그 상태의 겉모습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그 에너지를 쓰게 해 주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연구가 있습니다.
스위스 연구팀이 7~11세 아이 50명을 무작위로 나눠, 한쪽은 30분간 중강도 신체활동을 하게 하고 다른 쪽은 앉아 있게 한 뒤, 두 그룹 모두에게 아동용 스트레스 과제를 주고 침 속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여러 차례 측정했습니다(Messerli-Bürgy 외, Obesity Facts, 2019). 정상 체중 아이들의 경우, 앉아 있던 쪽은 스트레스 과제 후 코르티솔이 34% 올라간 반면, 미리 몸을 움직인 쪽은 오히려 26% 내려갔습니다. 같은 스트레스를 겪어도 몸이 받아내는 방식이 달랐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결과를 "운동하면 무조건 스트레스가 사라진다"로 읽으시면 곤란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더 큰 규모로 진행한 최근 연구는 조금 다른 그림을 보여 줍니다.
스위스 바젤대 연구팀이 10~13세 아이 1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Hanke 외, European Journal of Sport Science, 2025)에서는, 20분 운동 후 스트레스 과제를 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아이에게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평소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답한 아이들에게서는 운동 후 호르몬 반응이 더 안정적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즉 운동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이미 지쳐 있는 아이에게 특히 도움이 되는 완충 장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많이 할수록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국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내 학술지 스포츠사이언스에 실린 연구(변정은·이필영·김다애, 2019)는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의 신체활동량과 정신건강을 함께 조사했습니다(유효 표본 708명). 그 결과 신체활동 수준이 가장 높은 집단이 아니라 '중간' 집단에서 스트레스 지표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게 나타났습니다. 전체적으로 신체활동 수준은 스트레스·우울과 반대 방향으로, 자아존중감과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 물속에서는 조금 더 빨리 가라앉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연구가 아니라 제가 22년간 현장에서 본 것을 말씀드립니다. 물에 들어간 아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첫째, 물속에서는 숨을 아무 때나 쉴 수 없습니다. 정해진 타이밍에 맞춰 내쉬고 들이마셔야 합니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호흡을 규칙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둘째, 물이 몸 전체를 감싸 줍니다. 육상에서처럼 쿵쿵 부딪히는 충격이 없습니다. 셋째, 물속에서는 소리가 멀어집니다. 잔소리도, 알림음도, 친구들 목소리도 잠깐 물러납니다.
화가 난 어른에게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일단 숨 좀 크게 쉬어 봐." 물속에서 아이는 그걸 45분 내내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이건 제 현장 관찰이지 실험으로 확인된 결과는 아니니, 그 정도 무게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 학원 사이 45분을 어떻게 쓰실까요
부산 금정구, 특히 학원이 밀집한 장전동·구서동 아이들의 하루를 보면 앉아 있는 시간이 정말 깁니다. 학교에서 앉아 있고, 학원에서 앉아 있고, 집에 와서도 앉아 있습니다. 그 사이에 몸을 크게 쓰는 45분이 하나 들어가는 것과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이가 저녁에 보이는 표정에서 차이가 납니다. 상담 때 "수영하고 온 날은 좀 낫더라"는 말씀을 자주 듣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이가 짜증을 내는 건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쓰지 못한 에너지가 남아 있어서일 때가 많습니다."
스트레스를 없애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있을 겁니다.
대신 그 스트레스를 몸에 남기지 않고 흘려보내는 방법을, 아이가 어릴 때 몸으로 익히게 해 줄 수는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기다릴 줄 아는 힘 — 자기조절력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