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되면 학부모님들께서 학원 시간표를 다시 짜십니다. 그러다 보면 수영이 제일 먼저 후보에 오릅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요. 수영은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게요." 22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 말씀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은 공부 시간을 빼앗는 활동이 아니라, 공부할 수 있는 뇌 상태를 만들어 주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세 편에 걸쳐, 수영하는 아이의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을 근거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 경험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어른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또래를 대상으로 한 연구만 골랐습니다. 첫 편은 학부모님들께서 가장 궁금해하시는 것 — 공부머리입니다.
🧠 기억을 담당하는 자리가 실제로 다릅니다
우리 뇌에는 해마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새로 배운 것을 기억으로 저장하는 일을 맡고 있어서, 공부와 가장 가까운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마가 얼마나 움직이며 자랐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팀이 9~10세 아이 49명의 뇌를 촬영해 비교한 연구(Chaddock 외, Brain Research, 2010)에서, 체력이 좋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해마의 부피가 크고, 서로 다른 정보를 연결해 기억하는 과제에서도 더 좋은 성적을 보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해마의 크기가 체력과 기억력 사이를 부분적으로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몸을 움직인 아이의 기억이 더 좋았고, 그 사이에 해마의 변화가 놓여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연구는 체력이 좋은 아이와 아닌 아이를 비교한 것이라, "운동을 시켰더니 좋아졌다"까지는 말해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운동을 시켜 본 연구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같은 연구진이 7~9세 아이 22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실험(Hillman 외, Pediatrics, 2014)에서는, 아이들을 무작위로 나눠 한쪽만 9개월 동안 방과 후 신체활동 프로그램에 참여시켰습니다. 그 결과 참여한 아이들은 체력뿐 아니라 하던 일을 바꿔 생각하는 능력(인지 유연성)과 딴짓을 참고 집중하는 능력(주의 억제)이 함께 향상됐습니다. 뇌의 전기 반응을 측정한 지표에서도 변화가 확인됐습니다.
순서를 바꿔 놓고 보면 이렇습니다. 딴짓을 참고, 하던 생각을 바꾸고, 배운 걸 저장하는 것 — 이건 공부를 잘하기 위한 준비물의 목록과 거의 같습니다. 운동은 공부의 경쟁자가 아니라 준비 과정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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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만으로는 우리 아이들 이야기 같지 않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국내 연구도 함께 보겠습니다.
국내 학술지 한국초등교육에 실린 연구(손영주·이종목, 2016)는 초등학교 5~6학년 중 학교 체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 30명과 소극적인 학생 30명의 뇌파를 직접 측정해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이 주의·집중과 관련된 여러 뇌파 지표에서 더 높게 나타났고, 기억력과 인지 강도 역시 더 높게 확인됐습니다.
🏊 그중에서도 수영은 왜 다를까요
여기까지는 운동 전반의 이야기입니다. 그럼 수영은 어떤 점이 다를까요. 저는 수업을 하면서 이런 장면을 매일 봅니다. 아이는 선생님이 말한 순서를 머릿속에 담아 두고("팔을 먼저, 그다음 숨"), 물속에서 그 순서를 스스로 꺼내 씁니다. 숨을 언제 쉴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도 다음 순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운동장을 뛰는 것이 뇌에 길을 넓히는 일이라면, 수영은 그 길 위로 차를 몰아 보는 일입니다. 넓어진 길을 실제로 써 보는 과정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3편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 방학 시간표 앞에서 고민되신다면
부산 금정구, 특히 학원가가 촘촘한 장전동·부곡동 학부모님들께서는 방학마다 시간표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십니다. 저희에게도 "두 달만 쉬고 개학하면 다시 올게요" 하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그건 각 가정의 사정이고, 저는 그 결정을 존중합니다. 다만 수영을 '남는 시간에 하는 것'으로 두기 전에, 이 시간이 아이의 공부하는 힘에도 들어가는 투자라는 점은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사실 공부할 상태를 만들 시간이 없다는 말일 수 있습니다."
운동이 몸을 바꾼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뇌도 함께 바뀐다는 건 덜 알려져 있습니다.
수영하는 시간은 공부에서 빼앗아 온 시간이 아니라, 공부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시간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의 감정과 스트레스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